小國(소국)을 小人(소인)이 다스리면 벌어지는
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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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한시 크기는 서울의 14배나 된다. 중국 인구는 우리의 28배다.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
확진자가 8 만명이면 중국 인구의 2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, 우리나라에선 작은 도시 하나가 통째로 감염되는 수준이다. 감염자가 늘수록 우리는 더
위험하다. 숨을 곳도, 감염자를 격리할 넓은 땅도 없는 우리가 의존할 거라곤 외출 자제와 손바닥만 한 마스크가 고작이다.
문재인 대통령이 '중국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' 이라고 했을 때, 어울리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. 대개 누구의 아픔이 우리의
아픔이라고 할 때에는 우리가 더 큰 쪽에 속할 때 하는 표현이다. 우리는 위치로 보나 크기로 보나 중국을 끌어안을 수 없다. 호기 넘치게 중국에
마스크를 지원하겠다고 서두를 때java-script:;는 만용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. 우리 인구 전체가 쓸 마스크를 전부 중국에 보내도
중국의 한 성(省)조차 감당하기 어렵다.
과거 트럼프와 통화하면서 "남북 경협은 우리가 맡겠다" 고 큰소리칠 때도 느낌은 비슷했다. 남한의 반쪽조차 끌어안지 못하는 대통령이 북한 경제까지
맡겠다니, 천 원짜리 마스크 한 장 국민에게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과도한 자신감이다. 북한은 남한보다 영토가 넓다. 무엇보다
우리에겐 없는 핵무기가 있다. 누가 누굴 맡겠다는 것인가.
대한민국은 작은 나라다. 주변에는 이 작은 땅을 한때 탐냈거나
현재 탐내는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다. 지도(地圖)가 위대한 발명품인 것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와 크기를 알려주기 때문이다. 그동안 우리나라를
작아도 약하지 않은 나라로 가꿔올 수 있었던 것은 지도를 읽을 줄 아는 선각자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. 전 세계를 시장으로 개척하고,
자유국과 우방을 구축해 힘의 균형을 유지한 건 선택 문제가 아니라 소국(小國)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.
요즘 존재감이 없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외교부 장관은
국제기구에서 세련된 국제 매너와 영어를 익힌 재목이라고 들었다. 그 장관은 지금 자기가 유럽 어느 나라 장관쯤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.
그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"국민 안전이 제일 우선이지만 다른
사안도 고려할 점이 있다" 고 했고,
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해서는 "WHO(세계보건기구)의 권고와 국제사회 동향을 감안해야 한다"
고, 국제기구 직원 같은 말만 했다. 대통령은 마음이 북한에 가 있고, 외교부
장관은 아직도 국제기구를 헤매고 있다. 그 사이 우리나라는 인구당 확진자가 중국을 앞서고 전 세계 100여 나라가 입국을 거부하는, 한 번도
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.
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에겐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. 작은
나라이기 때문에 안으로 통합해야 하고, 작기 때문에 밖으로는 당당해야 한다. 큰 나라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며, 생존을 위한 결단과 현명함이
필요하다. 그리고 그 바탕에는 애국심이 필수다. 작은 나라가 강해지려면 도의적 기반이 필수다.
고(故) 이한빈 선생은 '의(義)는 나라를
영화롭게 한다' 는 잠언을 인용, 우리보다 훨씬 작은 스위스가
적십자 운동 같은 박애 사상으로 선한 이미지를 쌓은 것처럼 나라의 국제적 이미지는 도의적 기초에서 나온다고 했다. 요즘 우리나라는 이 모든 게
실종된 느낌이다.
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 '군자는 의로움[義]에서 깨치고, 소인은 이익[利]에서 깨친다'
는 말이 있다. 돌림병이 돌 때 의로운 판단은 그걸 막는 것이지, 이해관계를
따지는 것이 아니다. '사람이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 근심이 있다'는 말도 있다.
이때 멀리 내다본다는 것은 국가와 공적인 차원을 뜻한다. 국가의 명운보다 눈앞의 선거에 영혼을 빼앗긴 정치인은 모두
소인배다. 군자는 또 말은 어눌하지만 일은 민첩하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. 반면 소인은 말만 번드르르하고 일할 줄 모른다. 천문학적 세금을
거둬놓고 마스크 한 장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정부는 소인배와 진배없다.
그동안 나는 문재인 정부가 자기 지지층만 챙긴다고 생각해
왔다.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며 그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다. 지지층의 생명과 안전을 금쪽같이 여겼다면 본능처럼 중국발(發) 입국을
제한하거나 뭔가 강력한 조치를 했을지 모른다. 본심은 위기 때 나오는 법이니까. 국민을 지키겠다는 절박함을 WHO도 이해했을 것이다. 그런데
그러지 않았다. 지금 정부에 소중한 건 지지층도 아닌 것 같다. 그러면 뭐가 중한지, 묻고 싶을 뿐이다.
글 / 조선일보 칼럼 / 박성희
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
Lanfranco Perini -
The Last Of The Mohican